황금 세대(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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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축구 용어로 국가대표팀에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이 동세대에 다수 등장할 때 쓰는 용어다. 축구 국가대표팀이 참가하는 최대의 행사인 FIFA 월드컵이 4년 주기로 개최되기에 아무리 우수한 선수여도 월드컵에 참가 가능한 횟수는 결코 많지 않다. 때문에 국가대표팀에 재능 넘치는 선수들이 전성기 폼으로 최대한 많이 월드컵에 참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데, 시기가 잘 맞아 떨어져서 훌륭한 선수들이 동세대에 배출되어 우수한 전력을 보유했을 때를 황금 세대라고 부른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국가별 축구협회들은, 사실상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대표팀인 A팀의 경기력과 뎁스구축 및 원활한 세대교체를 목표로 유스시절부터 자국의 유망주들을 관리한다. 자국, 타국의 유스팀을 가리지 않고 장래 국가대표가 될 유망주들은 유스팀 시절부터 U12~U19까지 연령별 대표팀에 소집해 국제 경기 경험을 쌓고 동년배 선수들과 손발을 맞추게 된다.
이 때문에 10대때부터 여러 클럽팀에 분산되어 있는 유망주들이라 할 지라도, 앞서나가는 선수는 일찌감치 연령별 대표팀에서 한팀으로 뛰면서 차세대 국대 시험대상이 되거나 유스 대표팀 대회에 출전하며 축구협회는 물론 팬들도 이렇게 연합한 유망주들의 연령별 국제 대회 출전 성과를 중시하게 된다. 이런 구조에서 비슷한 나이대 우수 선수들이 몰려 나와서 유스때부터 국제 대회 성적이 좋은 세대는 황금 세대, 그렇지 않으면 골짜기 세대나 끼인 세대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 일반적. 혹은 황금 세대라 불렸음에도 기대 이하의 저조한 성적만 연속으로 기록하면 도금 세대라는 조롱도 받는다.
선수를 사오는 것이 가능한 클럽과 달리 국가대표팀은 철저히 해당 국가에서 태어나는 선수에 의존하게 된다.[2] 따라서 아무리 축구협회가 육성에 힘을 쏟더라도 그에 걸맞는 역량을 지닌 선수가 태어나지 않으면 전력 상승이 어렵다. 이 때문에 황금 세대는 귀중할 수밖에 없다.
2. 예시[편집]
2.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대한민국은 1954년 최초의 월드컵 참가 이후 32년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으며 1986년 월드컵부터 1998년 월드컵까지 4번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으나 단 한번도 승리를 거둔 적이 없다. 그 중 직전 월드컵인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마르세유의 비극을 격으며 세계와의 격차를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2002년에 개최국 자격으로 1포트로 본선 티켓을 얻었으나 당시 황금세대 였던 포르투갈과 미국, 폴란드라는 강호들과 한 조가 되면서 홈 경기임에도 비관적인 시선이 많았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을 필두로 이번에 작정하고 오랜시간 철저하게 준비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대한축구협회에 엄청난 지원과 K리그의 희생을 토대로 조적력을 끌어올리고 훈련체계 정리, 선수단 체계적 관리, 상대팀 분석, 의무팀 전속 계약 등 모든 시스템을 체계적이고 선진적으로 바꾸면서 한국 축구에 쇄신이 단행되었고 강한 동기부여와 홈 이점을 등에 업은 한국 대표팀은 월드컵 직전 단행된 유럽 강호들과의 평가전에서 놀라운 성적을 내며 월드컵에 대한 기대치를 끌어올린다.
그리고 시작된 월드컵에서 폴란드를 2:0으로 격파하며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승리를 얻어냈고 미국과 1:1 무승부, 우승 후보였던 황금세대 포르투갈을 박지성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잡으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한다. 그러나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대표팀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이탈리아전 2:1승, 스페인전 승부차기 승리로 4강 진출의 신화를 써냈다. 아쉽게 독일에게 1:0으로 졌지만 한국 축구는 이 시점을 기점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4강 신화의 영광 이후 오만쇼크, 도하 참사 등 좋지 못한 일들을 연달아 겪었다. 2006 월드컵에서 원정 첫 승을 따내기는 했지만 대회 직전에 조 본프레레 감독이 사퇴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던지라 경기력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웠고 그렇게 영광의 시간이 끝나는 줄 알았다.
2010년 월드컵에서는 새롭게 구성된 황금세대로 반전을 성공한다. 박지성, 박주영, 기성용, 이청용으로 구성된 양박쌍용을 필두로 사상 첫 원정 16강의 쾌거를 이뤄낸다. 별도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양박쌍용 라인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손꼽히는 수준의 공격-중원 라인으로 네 선수 모두 탈아시아급의 역량을 지닌 선수들이었고, 2010년 시기에는 각 포지션에서 재능이 만개한 상태였다.
그러나 2011년 아시안컵이 끝나고 지난 10년 간 한국 축구를 이끈 박지성이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은퇴하였고 그 이후 한국 축구는 10년 간의 암흑기에 도래하게 된다. 뒤이어 박주영이 아스날 FC로 이적한 이후 폼이 점점 하락하더니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최악의 활약을 보였고, 이청용은 2011년 선수 인생이 좌우될 최악의 부상을 당하면서 2010년의 황금 세대 주축인 양박쌍용은 해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이어진 이 암흑기 속에서 한국에 또 하나의 황금세대가 고군분투하며 팀을 이끌었는데 그것이 바로 기성용, 구자철로 대표되는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의 주역들로 구성된 런던 세대라 불리는 선수들이다. 그리고 암흑기 와중에도 2015 AFC 아시안컵 호주 준우승 주역이 되고, 카잔의 기적에 기여하는 등 나름대로 업적을 남기는 데에도 성공한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암흑기의 정점을 찍었지만, 성과가 없었던 세대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